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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4)-박찬호와 엔키엘, 끝나지 않은 도전
작성자  이석규     등록일  2007.08.11 03:27:00     조회수  1,895     다운로드수  0
박찬호와 릭 앤키엘 그리고 끝나지 않은 도전 


2000년 어느 눈부신 날의 박찬호와 릭 앤키엘 


2000년 5월 13일 토요일. 부시 스타디움에서는 홈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LA 다저스간의 숨 막히는 투수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두 팀의 시즌 첫 번째 맞대결이었던 하루 전날 에이스 데릴 카일을 내세우고도 무려 13실점하며 패한 카디널스가 이날 내보낸 선발 투수는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발표한 1999년 유망주 랭킹 1위를 차지한 메이저리그 2년차 신인 릭 앤키엘이었다. 

당시 7게임에 등판해 36이닝 동안 삼진 29개를 잡아내며 3승 1패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하던 앤키엘은 피안타율이 0.195에 불과 했을 정도로 위력적인 구위를 지니고 있던 좌완 강속구 투수였다. 2000년 스카우팅 리포트는 앤키엘을 ´캐리우드 보다 더 뛰어난 투수´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천재 투수’ 앤키엘에 맞서며 투수전을 펼친 다저스의 선발 투수는 98마일의 강속구와 메이저리그 최고급의 커브를 던지며 이전 4시즌 동안 47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발 투수로 발돋움 한 박찬호였다. 

이날 엔키엘은 7이닝 동안 무려 125개의 공을 던지면서 4안타 무실점 삼진 10개를 뽑아내는 눈부신 투구를 선보였지만, 구원투수 데이브 베레스가 다저스의 마크 그루질라넥에 2타점 역전 적시타를 허용하며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결국, 8이닝 동안 무려 12개의 삼진을 뽑아내며 3안타 1실점의 역투를 펼쳤던 박찬호가 다저스에 승리를 선사한 것. 비록 승패는 갈렸지만 이날의 승리자는 눈부신 호투를 하며 최고의 투수전을 만들어 냈던 두 투수였다. 

2000년 정규 시즌이 끝났을 때 박찬호는 18승을 거두며 내셔널리그 다승 5위에 올랐으며 217개의 탈삼진으로 랜디 존슨에 이어 리그 2위를 기록했다. 박찬호가 허용한 9이닝당 6.89개의 피안타는 내셔널리그 1위, 2000년 박찬호는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낸 것이다. 

앤키엘도 박찬호 못지않은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다. 31게임에 등판한 앤키엘은 175이닝 동안 삼진 195개를 잡아내며 11승 7패 평균자책점 3.50을 기록했다. 9이닝당 9.98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이 부문 2위에 올랐으며 9이닝당 7.05개의 피안타 허용은 박찬호에 이어 리그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79년 7월 19일 생으로 시카고 컵스의 코리 패터슨에 이어 그 해 내셔널리그에서 두 번째로 어린 선수였던 엔키엘의 미래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찬호와 릭 앤키엘에게 2000년은 그야말로 찬란했다. 


이들에게 찾아온 시련과 좌절 


2000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세인트루이스의 라루사 감독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 선발 투수로 에이스 대릴 카일 대신 엔키엘을 낙점했다. 

그러나 그것은 20살 어린투수 앤키엘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엔키엘은 디비전 시리즈 1차전 3회를 버티지 못하고 5개의 폭투와 6개의 볼넷을 남발하며 자멸한다. 막중한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엔키엘이 ´블레스 증후군´에 걸린 것. 

2000년 11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의 미래로 불렸던 앤키엘이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거둔 성과는 11게임 등판해 2승(2패)이 고작이었다. 34이닝 동안 무려 26개의 볼넷을 내주고 6개의 폭투, 5개의 몸에 맞는 볼을 던진 엔키엘은 끝내 제구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2004년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한편, 박찬호는 2000년 18승에 이어 2001년에도 15승을 거두며 그 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드>에서 선정한 자유계약선수(FA) 투수 랭킹 1위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결국, 다저스를 떠나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 6500만 달러라는 ‘대박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2002년 허리 부상으로 극도의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전반기를 마치고 마이크 햄튼과 함께 ESPN이 꼽은 ´최악의 선수´로 지목되는 수모를 당했다. 2003년에도 1승3패 평균자책점 7.58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메이저리그 ´최악의 먹튀´를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선수로 전락했다. 

이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재기를 노렸지만, 다시 장출혈이라는 악재를 만나면서 FA 계약 마지막 시즌을 그렇게 놓치고 만다. 2002년 이전 6시즌 동안 80승을 거둔 박찬호는 이후 5시즌 동안 33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으며 3점대였던 통산 평균자책점은 4점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국민들에게 희망과 환희를 안겼던 박찬호는 고국에서 조차 ´먹튀´라는 비난을 듣게 됐다. 박찬호의 5년은 그야말로 암흑과도 같았다. 


야구를 향한 열정 


망가진 천재 투수 앤키엘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엔키엘은 이제 투수가 아닌 타자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있다. ´블레스 증후군´은 엔키엘의 투수로서의 재능은 앗아갔지만, 엔키엘의 야구를 향한 열정까지는 빼앗지 못했다. 

마이너리그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엔키엘은 어쩌면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앤키엘이 지금도 야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 앤키엘은 결코 시련에 굴복하지 않았다. ´열정´ 은 앤키엘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재능이었을 지도 모른다. 

2006년 두 번째 자유계약선수가 된 박찬호는 60만 달러에 뉴욕 메츠와 계약했다. 박찬호는 시범 경기에서의 들쑥날쑥한 제구력 탓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됐고, 마이너리그에서도 여전히 부침 있는 투구로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이미 엄청난 부자가 됐고 메이저리그에서 100승을 달성한, 야구를 그만 둔다고 어느 것 하나 아쉬울 것 없는 박찬호지만 메츠로부터 방출 대기를 통보를 받고, 살아남기 위해 마이너행을 택하는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백만장자 박찬호가 여전히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기 위해 야구를 하고 있게 만드는 것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야구를 향한 ´지독한 갈증´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찬호와 앤키엘은 혹독한 시련을 겪었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여전히 도전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그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지만 회피하지 않고 있다. 2000년 어느 멋진 날을 함께 했던 두 선수의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데일리안 스포츠 매거진] 2007.5. 24. 이정래



PS. 이 글을 읽으면서 1994년인가 95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그 무렵의 일이 생각납니다. 한양대 체육부실 옆에 있는 기숙사에서 막바지 논문 쓴다고 며칠 째 정신없이 지낼 때였습니다.

김병수의 도움으로 체육부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느 잘 생긴 친구가 저에게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더군요. 누군가 하고 보았지만 모르는 얼굴이었습니다. 유니폼은 야구부였습니다. 옆에 있던 야구부 이 코치한테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박찬호라는 이름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물론 공은 좋은데 콘트롤이 안된다는 얘기도 함께...^^.

속으로, 그녀석 참 잘 생긴 녀석이 인사성도 밝구나 하고 생각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잊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스포츠 신문에서 그 얼굴을 보았습니다. 메이저에서 첫승을 올린 날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음...역시...하면서...

처음 본 사람이지만 야구부 감독, 코치, 그리고 김병수와 같이 점심을 먹고 있는 생소한 사람에게도 씩씩하게 인사하는 박찬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 릭 엔키엘이 타자로 전향한 뒤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첫 경기에서 쓰리런 홈런을 쳤습니다. 정말 스포츠는 이래서 감동적인가 봅니다.

경기는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동영상을 보면서 제가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라루사도 진심으로 축하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박찬호가 절치부심...메이저에 올라와 첫 경기를 완봉승으로 마무리짓고 환호하는 모습만 남았군요.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저는...






그날...










휴강하겠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과 소주 한잔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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