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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도였다는 게 참 좋습니다.
작성자  강남철     등록일  2006.11.19 03:46:32     조회수  1,505     다운로드수  0
사학과 출신이라고 연대표를 줄줄 외우거나 역사상 위인들의 행적을 주르르 꿰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사학과 출신임을 아는 누가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을 물을 때면 당혹스러울 정도지요.
학업에 열심이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겠고 강의실 책상보다는 한마당 아스팔트나, 막걸리집 술상을 선택한 결과라 인정합니다.

요즘 애들 학력고사 시험지나 교과서 보면 역사가 포함된 사탐 보다 오히려 국어, 언어 쪽이 더 수월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로만 사학과 출신이 분명합니다.
하긴, 돌아가신 모 교수님의 전공필수 과목을 4수강한 전력이 분명한 마당에 날나리 사학도임을 자백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사학과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화석처럼 또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시 못올 청춘시절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의 변형은 아닙니다.
문사철이 20여년 전이라고 각광받는 학문이었겠습니까만 그래도 눈치보기 아닌 소신지원의 결과로 허락된 사학도라는 신분이 아직도 자랑스럽습니다.

당시 주류이던 학생운동에 대해 반감, 아니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모 교수님의 소신도 당신의 사관에 근거한 당위라고 이해합니다. 또한, 무수한 결석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은 당대의 역사를 현장에서 만들고 있으니 괜찮다' 라시며 학점 후하게 주신 모 교수님은 은사를 넘어 동지적 연대감마저 품게 하셨지요.
학과 단위에서 주동과 반동이 나름의 이론과 실천으로 공존하는 곳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 뿌듯한 감회가 차오릅니다.

선후배, 동기들은 또 얼마나 듬직하고 자랑스러운지요.
젊음의 혈기가 어느 정도 작용된 결과라 할지라도, 기꺼이 자기 삶의 한 시절을(당시에는 전부였지요) 희생한 그들의 당당한 모습은 지금도 눈가를 적시는 감동입니다.

전공과 연관된 생업찾기가 어려운 현실임을 감안할때, 선후배 동문제위의 삶의 모습 또한 각양각색이리라 짐작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용 이전의 무엇인가에 가치를 두고 소중한 대학시절을 보낸 우리 사학도 모두는 물신이 지배하는 몰인간의 시대에 위기의 인문학을 지탱하는 잔 뿌리임에 분명하리라 믿습니다.
인문학은 파편화 된 학문의 갈래이기 이전에 사람살이의 근본에 대한 궁구라 믿으니까요.

술 한 잔 한 김에 사학도라는 사실만으로 이런 헛소리를 늘어놓습니다만, '역사'라는 무겁고 진지한 화두에서 완전히 놓여나지 못한 채 사회각계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실 여러 동문님들. 힘내십시오. 당대 역사의 주인공이자 구성원으로서 승리하고 성공하십시오!!!



#, 술김에 늘어놓는 헛소리일 망정 주절거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느라 애쓴 석규형.
   미안하고 고마워요.
   뒤늦은 인사의 꼴이 참으로 면구스럽기 그지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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